[10월] 6일 간의 전투 "청산리 대첩"

1. "청산리 대첩" 그 날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하여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던 그 때 이후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잃어버린 우리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의 선열들은 3.1운동 등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 기억해야 할 전투! 1920년 10월 21일!

10월을 기념하여 그 날 있었던 "청산리 대첩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2. 치열했던 6일 간의 전쟁

왼쪽 사진은 전쟁 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사진입니다. ^^

청산리 대첩은 하나의 전투가 아닙니다. 10월 21일 아침부터 10월 26일 저녁까지 일본 제국 육군과 10여 차례의 전투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와 일본의 병력 차이가 10배가 넘어 아주 불리한 상황이었으나 길고도 긴 싸움 끝에 일본은 2천여명의 사망자와 1천명의 부상자를 내고 우리는 100여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약 30배 차이에 달하는 기적같은 승리였습니다.

이런 기적같은 승리를 이끈 영웅들을 살펴 봅시다.

3. 전쟁을 이끈 대표적 영웅

#김좌진 장군

무장을 한 독립단체인 북로군정서군을 이끌던 분입니다. 위의 승리 후 사진에 보시면 사진 아래 중앙에서 다리를 꼬고 멋지게 앉아 있으신 분이 바로 김좌진 장군입니다.

김좌진 장군의 가족도 굉장히 유명합니다. 아들은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인공인 김두환이며, 손녀와 증손자는 유명한 연예인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김좌진 장군의 그 날 이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앉아 있는 분이 김좌진 장군의 증손자입니다. 이 분의 자녀가 3명이 있는데요. 그 이름이 대한이, 민국이, 만세입니다. 세 친구 이름을 합쳐서 불러볼까요? "대한민국만세~~"

#홍범도 장군

홍범도 장군이 이끌었던 독립단체 대한독립군은 3일 간의 봉오동 전투도 승리로 이끈 주역입니다. 이 전투 이후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 대첩에 참여합니다.

이렇게 우리 나라를 위해 애쓴 홍범도 장군님의 마지막은 조금 쓸쓸합니다.

그는 독립 운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가기 전에 이미 가족들이 모두 죽고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엔 우리 나라로 돌아오지 않고, 연해주라는 곳에 머물렀다. 이후에는 러시아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로 강제 이주당하며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카자흐스탄로 옮겨온 그는 거기서 집단 농장을 운영하기도 했고, 죽기 전에는 고려극장의 관리인으로 일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결국 독립 후 우리 나라의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그 날 이후

그 날의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되다

홍범도 장군이 이끈 전투가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주변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 되었으며, 아주 잠깐 홍범도 장군이 등장합니다.

카자흐에 잠든 영웅! 드디어 우리 나라에 돌아오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카자흐스탄에 특사를 파견하여 2021년 광복절에 유해를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그 날"의 이야기를 들은 "오늘" 여러분의 생각은?